2015년 8월 26일 수요일

몬스터을 본 적이 있습니까?









몬스터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 몬스터들은 지기제어 장치가 없어 본인이 몬스터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종족 입니다.
이들의 성향은 쾌쾌묵은 사고의 기름때가 얼굴에 잘잘히 묻어 있어, 몇번 이야기만 해도 대번 알아 볼 수 있지요 이 종족들은 세상이 어떻케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고, 이웃도 몰라라 하면서 자기안위에만 신경 쓰다가 50, 60, 70, 80을 바라 보는 하이에나와 같은 인간들 입니다.  전쟁, 가난, 기근을 겪으면서 지내온 세대인데도, 고생이 좀처럼 철이 드는데 보탬이 안된 종족들 이지요. 이런 인간들은 자식을 나아도 몬스터 종족이 되고,  같이 사는 식구들에게도 타격을 줍니다.

"한국은 유병헌, 윤창중, 강석진같은 인간들이 이 부류에 속 한다고 볼수 있지요.
이런 인간은 한국인의 자화상이 되어, 선량한우리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불량품이 많은 나라의 물건은 싸게 팔리는 것처럼, 몬스터가 많이 나오는 사회는
불량사회가 된다.
이런 몬스터들은 일찍이 사회에서 걸러지고 도태되어야 할 인간들인데
한국의 "물"은 정화되지 않고, 이들로 하여금 하이에나처럼 생존하게 하여 왔다.
강석진이 학생을 10년넘게 성추행했음에도 일찍 나선 동료교수도 없었고,
일이 터지자 듬듬이 커튼을 젖히고 나와 이제야 강씨의 심각함을 고발하니,
결국 주위에서 몬스터을 키워도 살찐놈으로 아주 잘 키운 셈이다.  얼마나
교수사회가 안이하게 돌아 갔으면 10년넘게 성히롱자을 그냥 놔 둘수 있었겠나!
미국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 어린여아을 유괴하여 집 창고어 가두어 몇십년
 성추행한 사건도 있지만, 공공기관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케이스이다.

미국 미디어에선 A교수니 하는 따위의 익명이 성추행 혐의자에게 사용되지 않고,
실명으로 보도한다.  성추행사건이 터지면 성추행자의 얼굴이 공개되면서 뉴스는 곧 퍼진다.

하지만 한국에선 미디어에선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모자이크), 경찰은 고개을 숙이게
하고 후드로 얼굴을 숨기게 한다. 미국 경찰 같으면 오히려 고개을 쳐들어 범법자의 얼굴을 미디어에 공개하려 들거다. 미국 먼탈리티로는 당나귀을 등에 업고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다.  한 은퇴한 미국인 신문 기자는 취재 중에 범죄자 후드로 얼굴을 가려
제치려하다 덤벼드려는 순간 옆에 있던 경찰으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범죄자가 보호을 받는 나라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된다..정말 골때리고 우스운 관습이다.
강석준이는 10년이 넘게 성추행을 밥먹둣이 저질렀어도 고작 2년 구형을 받았다.
미국같으면 족히 10년을 때릴일 이다.
 법이 약해서, 멍청해서(?) 한국은 몬스터가 많은 걸까?

니이가 들어가며 주위에는 몬스터가 득시글 거린다.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 - 교육,사회시스텀, 패거리 문화을 꼽을 수 있다.
교육차원 에서는 인성교육을 등한시한 결과이다.  인성교육이 잘 안되는 이유는
선생들의 인성이 없어, 그의 파급효과가 전 학생에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은 있으면서, 학생의 인성함양은 선생의 몫이 아니라는 책임 회피에서 비롯된다.  올코/그름의 생각이 서로 토론이 되고, 그밖의 매너등등이 함양이되고,  학생이 서로 돕고 배우는 관습이 키워져야 하는데, 선생의 자질이 못 미치니, 스스로 포기한 상태다.

두번째는 패거리 문화인데, 이것의 실체는 남과의 교류 부재가 원인 이다.  마치 축구에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축구경기의 코드가 바뀌었는데 아직 미처 인식을 못하고 참전하는
꼴이다 - 즉, 세상이 바뀌었는데 적응을 못한 격이다. 아무리 유능한 선수라도 팀멤버이다; 팀의 규율과 법칙을 준수해야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실력만 있으면 걸림이 없이 특권을 누리게 한다; 열등감의 문제다.

세번째는 시스템이 잡초을 고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찰이 성추행자을 구속하고, 그 기록이
남아있어, 언제든지 공공기관에서 볼 수있어 추행자는 발을 못 붙이게하는, 미국의
"CORI"같은 시스템이 구축이 안되서 이다.

한국은 유교문화이다. 유교문화는 부패을 유발시키기 좋다.
유교와 인간을 큰 항아리에 넣고 휘휘 저으면 몬스터들이 하나 둘 항아리을 기어 나온다.
다음번에는 어떤 몬스터가 기어 나올 것인가? 정말 궁금해 진다.
우리 주위에는 몬스터가 정말 많다.


학력병: 학력 질문-----뚝!!!



                                                              “Education doesn't make you smarter.”

                                                                                      ― Aleksandr Solzhenitsyn

                                                               "Do not judge a man until you've closed his coffin."

                                                                ― Lee Kwan Yew  

"학력" 혹은 "성"을 사회가 얼마나, 어떻케 보느냐는 그사회의 세련됨을 나타낸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성을 사회가 어떻케 처리하고 보는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학력을 사람들이 서로 어떻케 보는지는 사회가 얼마나 성숙되어 있는지 알수 있다.   사회도 옷이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을 고집 한다.

학력이 사회에서 학력적 대우 받으려면 성과나 결과가 있어야만 한다.  노벨상을 받는 다던지, 훌륭한 사람을 많이 배출한던지....   그래서 년마다 학교을 따지는 랭킹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 변변한 노벨상 하나 없이 학력에 맹신 한다. 이 맹신으로 인해 '간판'이란 말까지 나오게 됐다. 이것은 단지 학력이 사회의 발전을 지탱하는데 ㅆ여지지 않고 과장 되게 신분을 가르는데 이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용도로 쓰면, 사회가 자기 성찰을 하여야 한다.  마치, 농약이 잔뜩 묻은 사과 라면  껍질을 벋겨 먹어야 하는 일과도 같다.  학력을 다루는 문제가 복잡할 수 있기에, 보통사람이 어렇고 저렇고 할 일이 용이 하지 않고 보는 게 좋다. 가령, "학력"을 사회가 아니면 개인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그것에 얼마 만큼의 가치을 두고 잘 보느냐 이다.  오십년전에 만원이 지금에도 만원 정도 밖의 값어치가 된다면  값어치는 떨어진 셈이다. 지금의 값어치는 그의 10배 20배 정도여야 제 값어치 이다.  또, 그 값어치을 50배 100배로 요구 한다면, 그 또한 잘못된 일이다.

 학문을 통한 성취가 가져다 주는 기쁨이 있다.  하지만 학문 대신 학력을 추구하는게 솔직한 표현 일게다.  인류을 위해 학문과 연구을 하고 노벨상을 타는 사람의 정신을 살려 학문에 몰두하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에서 단 한개의 노벨상도 안 받아놓고 학력읗 운운 하는게 모순이다! 빨리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학벌을 추구하고만 살아 왔다.  간판만 따지는 한국인의 습성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 때문에 한국은 발전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학벌을 너무 추구하고만 살아 온 나머지 우리 주변에 학력병에 걸린 노이로제 환자들을 종종 보게된다.


학력병 증상은 대충 말하면 이러하다:
"학력이 인간을 우선한다."
즉, 학력을 간절히 소망, 혹은 자랑하고 싶은 나머지, 인간, 인간됨, 혹은 인간미을 잠시,아니면 오랫동안 포기하거나 유보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좀 좋케 말해 상식의 수준을 넘어선 상태 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진정히 학문을 사랑하고 학문을 진정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학력병에 걸릴 수 있을까?  이러한 전제을 놓고 보면, 한국인 중에는 진정으로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 많치 않은 것 같다. 미디어에서 부추기고, 수능일에는  비행기 이착륙이 지연되는 일까지 벌어지니,  오히려 국민이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는게 이상한 일 이다. 닭이먼저냐 아니면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소리 같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강박관렴은 벌써 우리가 인간을 제데로 알고 관계을 맺는데 우리의 눈을 흐린지 오래다.

별의 별 형태의 학력에 대한 편집증을 우리는 갖고 있다.
미디어가 김연아선수에게 굳이 갖다 붙이려고 애쓰는 고려대 태그,
고작 나이 16살에 수능에 실패했다고 자살하는 사람 등등....
혹은 16살에 세상을 얻었었다고 착각하는 사람..
묘비에도 "아무개박사의 묘" - 미국에도 "박사"칭호가 묘비에 적흰 이름에 까지 따붙는 지는 모르겠다만, 죽어서도 학력타령이다.
왜 학력병이 한국에선 심한가?
한국은 학력병을 키우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에대한 시너지 효과도 아주 크다.

이러한 조건들은 한국인이면 다 아는 사실이고, 그리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학력병 때문에 노벨상이 안나온다 - 학문을 하지 않고 학력을 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가 학문을 잘해 노벨상을 여러개 따면 얼마나 좋은가!
학력만은 알멩이가 비어 있는 느낌이고, 높은 문화수준은 아니라 느껴진다.

이제는 진짜 서로간에 문화수준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나!
사실, 학력병에 걸린 사람은 학력 외에 소중한 것이 많다는 걸 모르는,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과 흡사하다.

한국땅에 태어나 이병을 피해가는 사람은 몇 퍼선트나 될까?
명문대학을 나오고 미국생활을 오래해도 이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민 온지 사반세기가 지난 사람조차 몇십년 만에 만나게 되도,
"안녕 하세요?"라는 인사말이 나오기도 전에 "댁의 아이들 어느대학 갔어요?"가 더 궁금한 한국인.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그리고 완전한 교육가관 교육시스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재질과 다른 능력을 타고 났다. 어떤이는 순수 노력으로 어떤이는 노력과 탤런트로 16세에 도전에 성공한다. 타고난 탈란트을 자랑하고, 성공과 실패에 높은 비중을 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나,  인생은 성공과 실패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생까는 행동이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아들 딸 자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자식이 원하는 대학에 못갔다고 죽상인 부모도 있다. 이거 너무 적나라하게 본인의 교양과 매너의 수준을 보여 주는 질문 아닌가?  우습지 않나!

학력병, 이것 본인의 열등감 표출 아닌가!  이거 못살던 시대의 전유물 아닌가!
모든사람이 저마다의 환경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탈란트 로 열심히 노력만 하는 걸로 용기있는 아량의 눈을 갖우면 덧나나!

남에게 질문하는 것도 세심한 배려와 기술이 요구된다. 한국은  G20 선진국이라 한다. 이제 이런 학력에 관한 일  이라던지 매너도 선진국 수준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다른 선진국 사람들이 생각해 봐도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고가치, 매너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한국에서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미국의 무식한 백인보다는 교양과 매너는 낫다. 하지만 더 공부한 사람이 필리핀, 희스페닉, 흑인보다 어떤면에서 더 교양없고 매너없이 선진국 사람이라 불리울 수 있겠나!

학력병, 이것 본인의 열등감 그리고 미성숙의  표출 이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재질과 다른 능력을 타고 났다. 하지만 어떤이는  운좋케 사회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갖고 어떤이는 그렇치 못하다.
인제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이 무엇이고, 인간의 참된 가치가 무엇 인지도 생각 해 봐야 한다.


2015년 8월 23일 일요일

나그네 - My encounter with the lamp




When we are young we are not so much aware of fragile nature of our condition potentially riddled with freaky accidents. Maybe such the notion would not come easily into our mind for us to lead carefree living.  Our awareness of our precarious condition may not be usually strong enough until we are stuck with a misfortune. For children,  the notion of dying is hard to grasp even encountering death of beloved pets in their lives. Soon or later, we all come to realization that it's not just our pets are subjected to mortality, but humans are also fall into the same predicament.  As we grow older, we more or less have experienced with "death" in accidents, illnesses and natural causes among the members of family, friends, colleagues, neighbors, which would lead to thinking about our own mortality. We all experience death in one shape or the other, but the degree to which the notion come to our consciousness may differ one another;  some sages realize this  early in their lives like Buddha, but for any ordinary human being it may not come so naturally.  It is through internalization, meditation, and philosophical thinking as we gain spirituality.

My grandmother suffered from a long illness before she passed away.  For that matter, when my grandmother died when I was a little,  sadness did not encroached upon me harshly. My view of  her death was more or like that of Lao Tzu, as an event that takes place naturally, not stirring up much emotion.   However, as I grew older and became more sympathetic toward unfortunate events of human lives, Several years later, after passing away of my grand-mother, a friend of our family passed away early in her last 40's.  Growing up in a large family living with my great-grandmother who was over 80 years old at that time, I figured that the lady passed away much early in her life. Her death struck me breaking the notion that a person does not have to be old to die . Unlike my grand-mother, the lady passed away too young. The woman had lived in my neighborhood, and I remember visiting her house for the first time when my father took me along with, and several times thereafter when my mother stopped by her house for chatting on the way home from shopping at the market place.   One day, coming from school,  I noticed a lamp hung outside the main door of her house. For I had seen the type of lamp lit several years prior when my grandmother passed away, I knew immediately what the implication of the lamp was for. The light shinning in the evening in late fall exuded a desolate feeling.  Later when I I was told that the lady of the house passed away, my mother was shocked at the news and kept on saying that her life was cut too short abruptly only in late 40's.  It was unbelievable to me that the lady who came to my house just several days ago to chat with my mother could be gone so soon. I have come across a number of abrupt events like her death throughout my life, and became feeling sad and deeper into realization how we are walking on thin ice. As a person who had experienced death right after marrying, through a miscarriage. I wonder any of my sibling has ever experienced such feeling in their lives like I have been through the moments, that seem to be so prevalent in our social lives and yet seldom experienced in their lives yet.  Visiting the house following my Dad rendered a situation to think about death in my early life, and I wonder sometimes asking to myself, " why I was the one who was asked to come along with Dad, and why it was me who stopped by her house along with my Mom, not my siblings altogether, not with any of my siblings, on that day?"

About one year later, my father took me to an excursion to a mountain, which were accompanied by several of his friends, including widower of the lady.  Meeting them at a cafe at the foot of the mountain, I heard my father consoling his friend encouraging him to get over his grief. While they were talking, I was bored, asking the a question to myself, "Why I came here with Dad alone, not with any of my sibling?"

I live in a town where not many Koreans live, but I have come across with another "Way me?" moment recently.  I jug along the route 36 time to time, passing by an old cemetery in the town where I live.  On one evening, I decided spontaneously to go up on the hill to see the cemetery, perhaps with a reason that it might help me to decide my body be buried in a cemetery instead of cremated when the time comes. As soon as I ran up, I noticed many tombstones, one of which popped out my eyes opened in surprise of a tombstone carved out in both in English and Korean. I did not expect to find Korean characters in the graveyard.   I would have easily paid no attention to the tombstone if it had not been in Korean characters.  The tombstone is of a young lady, whose age is too young, to be mourned for anyone; I could not think of myself laying there in such young age - my life barely started at that time, and I became sad thinking about fragility of human condition that had fallen on her in such young age.  I asked to myself the the same question: "Why me? That I found myself standing in front of her tombstone today." On the next day, I bought a flower and laid in front of  the tombstone to pay her a respect and to think of my finite time left here on this earth.

Sometimes, in our lives, we encounter moments that are too difficult to handle. In this moment, we contemplate that there is not much difference between dead and alive.  There is some benefit of thinking immortal nature of human existence; ourselves laying in coffins several feet underground resting in peace.  The moments can come as learning experiences, like a Judo master who said that part of Judo is learning how to fall down gracefully without getting hurt. After all, dying is falling from living. Longer I live, I would think of the extra time here on earth as a gift allowing us to do the things that we love, perhaps loving humanity, and more practice time for those who are afraid of dying, like in Judo which has great time spent on falling gracefully in order to minimize inherent risks and dangers involved with falling.




Stuck in a library

Life is made up of a bunch of stories. There are sweet ones and sour ones. The sweet ones are treasured and they are taken out to be rem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