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7일 목요일

학생의 인권 ㅣ-- 초등학교 여자선생의 히스테리



인생에서 어떤 사건들은 몇십년이 지나도 뇌리에서 떠나지못하고 생생하게 기억되는일이 있다.
나의 한국초등학교 2학년때의 여자선생의 행동이 그런데 속한다. 그때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리웠고 초등교육이 의무교육이 아니었던 때였다. 선생는 방과을 마치는 학생들에게 종종 "육성회비"을 갖다낼것을 부탁하였고, 몇일씩 몇몇학생들이 회비를 못내자 그학생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 여선생은 이쁘지는 않고 좀 신경질적인 스타일이었는데, 그 신경질의 진면목이 왕짜증으로 토해져 내려오는것을 내어린눈으로 볼수있었다. 선생은 육성회비를 오래못내는 한학생을 불러 교단옆에 세우고는 온갖 신경질과 비아냥을 어린학생에게 쏟아부었다. 선생은 "넌 어디에 사니?"에서 부터 "육성회비를 왜 못내니?", "지금 당장 가서 가지고 와!" 하는 어거지까지 써가면서 60명이 넘는 학생들앞에서 이학생에게 면박을 주었다. 그학생은 걸어서 매일두시간반넘게 통학하는 가난한집의 학생이었다.

그 9살 밖에 안된 어린학생은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여자선생에게 수모를 배웠고 60명이넘는 동료 학생들 앞에서 수모를 당해야만했다. 우리 60명이 넘는 2학년학생들은 선생의 실체는 "사랑" 과 "인자"라는 극히 동양적인 개념을 읶히기도 전에, "면박"과 "수모"라는 단어을 이학생과 선생을 통해 그를 체헴했다. 이일은 내가 깡패선생을 만나기 10년전의 일이였다. 남자 깡패선생은 꼴리면 폭력을 퍼붓지만, 여자선생이 꼴리게되면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바가지가된다는것을 지금 느끼게 되었자.

학생의 인권 II--늙은 닥대가리선생




인생에서 어떤 사건들은 몇십년이 지나도 뇌리에서 떠나지못하고 생생하게 기억되는일이 있다. 나의 한국중학교 국어선생의 몇날의 행동거지가 그런데 속한다.  나는 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선생은 여느때와 같이 국어선생마냥 항상  하얀 와이셔트에 옅은 회색양복 입고 고상한 품격을 뿜는 좀 마른타입의 선생이었다.

하루 어느 이른 여름날 오후, 밖에서는 매미소리가 들릴때, 선생이 교과서을 읽는 도중에 난데없이 소리가 들렸다 --  쓸데없이 한학생이 선생의 별명 "늙은 닥대가리"을  선생귀에 들릴정도로 불렀다. 이 학생은 왜 그랬을까? 그냥 심심해서 장난끼가  꼬였나보다. 이 툭 내던진 짦은말이 선생귀에 들렸다. 이학생이 아무 이유없이 갑작스럽게 내뱉은 말은 내귀에 왜그랬느지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 나는 그선생의 별명이 "늙은 닥대가리'인지도 몰랐다. 선생은 자기가 학생들로부터 이별명으로 불리운다는 것을 알고있었나보다. 이는 그의 심기를 몹시 상하게하는 말이었다. 선생은 내색을 별로 않고 학생을 불러 젊잖케 타일렀고 수업은 끝나 문제가해결된둣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그친게 아니었다. 선생은 이일을 담임선생에게 고자질하고 그여파로 담임선생은 상사인 이선생에게 핀잔을 받았나보다. 방과후 담임선생은 몹시 화난상태에서 교실문을 밖차고, 들어오자마자 큰소리로 이학생을 교단앞으로 불러제꼈다. 담임선생은 약 30cm되는 고동색의 반짝반짝 광택나는 박달나무로 만든 몽둥이를 항상 들고 다녔다. 안경을 끼고 수업시간에는 학생들에게 존댓말로 대하는 어눌한 목소리에 몽둥이는 그저 귀여운 악세사리정도로 보여지는 그런 몽둥이가 잘어울리지않는 그런선생이었다.

 하지만 그몽둥이가 왜 바짝만짝 빛을 발하는지 알수있는 광경을 그날 처음볼수있었다. 선생은 말도없이 순식간에 난폭하고 미친 폭군으로 변했다. 담임선생은 학생에게 주먹을 먼저 가했다. 한대 맞은 학생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둣이 퍼붓는 선생의 주먹을 학생은 피하고, 그학생이 피하려고 뒷발을 몇발자국 걷자 선생은 몽둥이를 찿았다. 그리고 교단위에 놓여진 몽둥이를  지버들고 그학생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때때로 그학생의 머리를 사선으로 내리쳐져 "퍽"하는 소리가 여러번 들려 혹시 학생이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 뇌리에 스쳐지나같다. 교실안에 모든 학생들은 잠자코 그사태를 방관할수 밖에 없었다.

그학생의 영혼은 그날 양복입고 기생오라비같이 잘생긴 국어선생의 닥대가리같이 짧은생각과 행동으인해 한순간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담임선생은 그 닭대가리선생의 대행인 이었던 겄이다. 그날의 방과후 담임선생은 폭군이었다.

닭대가리선생은 그다음날 수업시간에 아무일도 없었다는둣이 나타나 여느때와같이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바지를 걸치고 갖 시집온 새색씨모양 다소곳이 여름의 무료한 수업을 이끌고같다. 그학생은 그사건이후 여러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양복입은 기생오라비같은 이 중년의 국어선생은 나이을 헛먹은 별명그대로 닭대가리였다. 만약 이사건이 미국에서 일에났으면 어떠하겠는가? 일단, 미국교사가 학생을 구타하기위해 몽둥이를 들고 다니지못하게 되어있다. 만약, 교사가 몽둥이없이 주먹으로 학생을 때렸다면, 그 교사는 법정에 서게되고 범죄의 심판을 받고, 유능한 피고변호사를 만났다면 살인미수에 한 10년정도 감옥에 갈확률이 높다. 담임선생은 한국에 태어난걸 감사해야한다. 그학생은 인제 닭대가리 선생의 나이가 되었을테고..그때 그가 쓸데없이 내던진 말의 댓가를 너무 너무 독하게 치뤘다. 그이후 여지껏 살아온 인생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고통이없었고 없길 바란다.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아이의 재능

부모의 성공과 실패는 아이들의 재능을 얼마나 잘 간파하고 어려서부터 얼마나 그재능을 잘 키우느냐에 달려있다. 공부가 아니라도 숨겨진 재능을 모든 아이는 갖고 있다. 아이들을 공부몰이로 내보낸다고 모든아이들이 우수한 성적을 받지 않는다. 모는 사람이 똑같은 공부의 재능을 타고나지 않다.

얼마전에 딸내미가 올가을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자녀을 둔 학부모들을 위한 고등학교 오리엔터이션이 있다. 조그만 구릅으로 나뉘어져 학생자원봉사자들을 따라 이곳저곳 학교을 구경하며 질문도할수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어느 한 봉사자가 AP코스에 대하여 한 학부모에게 성명을 하려하자, 이 학부모는 대뜸하는말이 "내 아이는 Ivy League에 갈만한아이가 아니니 설명할 필요가없다."고 잘라 버렸다. 나는 옆에서 이 말을 듣고 놀랐다. 아직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자녀의 능력,취향, 적성을 벌써 미리파악하고, 굳이 힘겨운 공부을 자식에게 감당시키지않으려는 학부모의 태도였다.  아이들의 행복에 먼저 관심을 두는 미국학부모의 배려는  한국부모로서  생소한 부분이다.

자식이 부모가 원하는데로 척척 공부도 잘하고, 바이얼린, 첼로, 피아노도 잘하면 좋겠지만, 어찌 세상사가 쉬울까? 명문대출신부모라도 딸 아들자식은 저절로 부모처럼 되지 않는다 . 즉, IQ좋타고  자식농사가 저절로 잘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재능은 보지않고 남들따라 피아노 시키다 포기하는 경우가 된다. 재능도 공부하는 재능, 바이올린 켜는 재능이 따로 있는데,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바이올린도 열심히 하면 좋겠는데, 그렇치못하면,여기에 부모의 Parenting skill이 요구된다.

현대는 공부만을 요구하지 않느다.  요즈음은 젊은이치고 한가지 악기못다르는사람 별로 없다.

2010년 5월 23일 일요일

학생의 인권 III--깡패선생



지금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선생한테 두들겨 맞는 경우가 거의 없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수십년전,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서 1975년 늦은 6월, 여름향기가 시작할 무렵,  계동에서는 - 미국에서는 선생이 쇠고랑을 찰만한 - 선생폭력 사건이 벌어졌었다.
이사건은 몇십년이 지나도 뇌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데, 나의 영어선생이 오늘같이 무척 더운 여름날 한 행동이다.  더운날에 인생에서 우러나온 구수한 말이라도해서 학생들의 지친마음을 달래보려는 한가닦의 마음이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으리련만...

이 선생의 별명은 "깡패"이다. 언제부터 무슨일로 이별명이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그의 포악스럽게 생긴 큰 얼굴하며, 튀어나온 배을 내밀며 매일 지난밤에 마신 술독이 가시지 않은채 복도을 스치며 지날때의 냄새는 선생에게 깡패보다는 "술꾼 "이 더 어울리는 타잎이었다.  아침시간 복도을 걸을때는 마치 지난밤 늦게까지 마셔된 술에 혼미한 정신을 추스리기라도 하는 둣한 표정과 선생이라는 자존심을 내세우려도 한둣 팔자 걸음으로 천천히 걷는 모습은 수십년이 지난 이후에도 내머리에 선생 이미지중 샘플로 남아  있다.

사건은 이렇다. 선생은 이 여름날 무료한 수업을하다 말고는 쓸데없는 야한조크를 학생들앞에서 하기 시작했다. 어떤 조크는  학생의 사생활을 고려하지않고 개인적인 침해를 주는 것이었다. 이조크를 즐겁게 듣고있던 뒷자석의 한 학생이 조그만 소리로 쳐받아 툭 내 던진말이 선생귀에 들렸다: "네거는 얼마나 커서.." 이학생은 선생의 폭력적인 성품과 뿜겨내는 포악스런 모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뱃은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그의 말은 선생의 심기를 몹시 건드린 말 이었다. 선생은 곧 이학생을 교단앞으로 불렀고 말도 않고 구타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구타는 그칠줄모르고 남은 수업시간 20분 동안 계속되었다. 선생은 그의 큰손으로 학생을 심하게 구타하던중에 끼고있던 손목시계가 거추장스러워지자 그것을 풀고는 계속해서 손으로 구타하면서 학생을 교실 코너까지 몰고갔다. 그 학생의 코에서는 코피가 터지고 계속되는 구타로 얼굴은 코피로 범벅이었다. 종소리가 울리고 수업시간이 끝나자, 선생은 양복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으면서 학생에게 말을 꺼냈다, "네 아버지 무었하는 사람이냐?" 학생은 고개을 숙이고 대답을 했다. "학적부같고 내 책상으로 와!"하면서 학생에게 모욕을 주면서 교실을 빠져나갔다. 코피 교실바닦에 떨어져다. 한학생이 손수건을 갖다 주었다. 교실안에 모든 학생들은 잠자코 그사태를 방관할수 밖에 없었다. 나는 피범벅이된 교실 바닦을 걸레로 닦았다. 나는 이일로 이선생의 별명이 왜 "깡패"인지 알 수 있었다.

학생의 영혼은 그날 양복입고 배나온 선생의 횡포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선생은  교사자격증도없이 오래선생을 해오다가 들통나 학원을 전전한다는 소문을 후에 동창생을 통해 들었다.

만약 이사건이 미국에서 일에났으면 어떠하겠는가? 일단, 미국교사가 학생을 주먹으로 구타하면, 그 교사는 법정에서 범죄의 심판을 받고, 유능한 피고변호사를 만났다면 폭행혐의에 한 20년정도 감옥에 갈 확률이 높다.  적어도 미국사회는 이런 폭력적인ㅊ선생을 선생으로 놔 두지는 않는다.

지금생각하면 선생은 한국에 태어난걸 몹시감사해야한다...감옥은커녕 학생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한줄도 모르고 저세상으로 갔을 테니까..

학생은 인제 깡패선생의 나이가 되었을테고..그때 그가 쓸데없이 내던진 말의 댓가를 너무 혹독하게 치뤘다.  이학생이 쓸데엇이이 내던진 말로 인해 온 교실 앞에서 그날 격은 고통스러운 20분은 사반세기가 지난 이후에도 내기억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때의 모든학생들은 숨을 죽이고 한 학우가 선생에게 당하는 폭력을 방관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으 누구도 나와 항변을 못했고, 우리는 모두 비겁한 벙어리였다.  방과 후, 우리 담임도 어떤 항변도 한 흔적없이 그날을 마감했다.

이학생의 부모는 그날 아들이 입술아 깨지고 피범벅이 되어 집에 온 것을 보며 얼마나 울화통이 터졌을까!  고등학생도 아직 어른이 아니다.  어른이 아닌 아이에게 난폭하게 구는 걸 "꼰데질"이라고 하지 않나!

 그날 깡패선생의 행동은 "인간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이런행동을 할수 있게 허용하는 사회는 괜챦은 사회일까? 라는 질문들을 오랫동안 던지게 한다. 이학생이 그 이후 여지껏 살아온 인생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고통이 없었고 없길 바란다.

Stuck in a library

Life is made up of a bunch of stories. There are sweet ones and sour ones. The sweet ones are treasured and they are taken out to be remini...